단디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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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디 행진

단디 행진(Dandi March) 혹은 소금 행진(Salt March)은 1930년 인도 총독부의 소금 정책에 반대하기위해 마하트마 간디가 주도한 비폭력 민중 저항 운동 중 하나이다. 소금 사티아그라하라고도 한다.

배경

당시 영국 정부는 인도인에 의한 소금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고, 총독부가 소금과 관련된 독점권을 행사하게끔하며, 인도인들에게 과도한 소금세를 부과화는 내용의 소금법(Salt Act)을 시행했다. 소금은 인도의 주 생산품 중의 하나이며, 인도인들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재였기 때문에, 많은 인도인인들의 생활이 곤궁해져 갔다.

행진의 진행

당시 61세의 노인이었던 마하트마 간디는 자신의 철학인 사티아그라하[1]에 따라 대대적인 반영 대중 투쟁에 나섰다. 그는 구자라트아메다바드 근처 사바르마티 아쉬람(Sabarmati Ashram)에서부터 소금 생산지 중 하나인 아라비아해의 해안가 도시 단디(Dandi)까지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행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최초에 그와 함께 시작한 사람들은 모두 78명이었지만, 전국 각지에서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수만명의 군중 행진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1930년 4월 6일에 출발하였고, 24일 동안 총 390 km의 거리를 걸어 단디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단디의 해변가에서 생산한 소금을 한줌씩 들며 스스로 소금법을 위반했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저항 운동은 단디에서 뿐만 아니라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어 소금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반체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대규모 저항 운동에 당황한 총독부는 서둘러 사태를 진압하려 하였고,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이에 참여했던 60,000여명의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여 투옥시켰다. 간디는 1년 뒤 1931년에 출소하였고, 당시 총독이었던 어윈 경(Lord Irwin)을 만나 추후에 있을 런던 회담(London Conference)에서 동등한 협상권을 받는 조건으로 반영운동을 중단할 것을 약속하였다.[2]

여파

소금 사티아그라하는 전세계적인 이목을 끌었으며, 간디는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또한 인도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쳐 이후 독립을 성취하게 하는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각주

각주

  1. 비폭력 저항의 근본 정신
  2. Gandhi–Irwin P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