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브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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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브 간디
Rajiv Gandhi
Rajiv Gandhi at 7 Race course road 1988 (cropped).jpg
본명 Rajiv Ratna Gandhi
출생 1944.08.20 뭄바이
사망 1991.05.21 타밀 나두 (46세)
국적 인도 공화국
학력 트리니티 콜리지,
캠브리지 대학교 (수료)
직업 정치인
종교 힌두교
배우자 소냐 간디
자녀 라훌 간디, 프리얀카 간디
부모 인디라 간디
소속 인도 국민회의 (INC)

라지브 간디(Rajiv Gandhi)는 인도 공화국 정치가이자 제6대 총리이다. 전임 총리인디라 간디의 장남이자, 초대 총리자와할랄 네루의 외손자이다.

초기 생애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다. 1966년 국영 항공사인 Indian Airlines에 파일럿으로 입사했고, 1968년 대학에서 만나 교제해 오던 이탈리아인인 소냐 간디와 결혼했다. 당시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는 인도 국민회의 (INC)의 수장이자 연방 총리로서 정치권의 핵심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본업인 파일럿에 집중하였다.

정치적 커리어

1980년, 인디라 간디의 둘째 아들이자 라지브의 남동생인 산자이가 본인의 취미 생활인 경비행기 조종을 하던 도중 추락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된다.[1] 이에따라 라지브는 어머니를 비롯해서 국민회의 중진들로 부터 정치 참여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 자신도 처음에는 정치인이 되는 것을 망설였으나,[2] 파일럿을 그만두고 국민회의 청년조직 의장을 시작으로 정치적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1981년 보궐 선거에서 우타르 프라데시의 아메티 디스트릭트 선거구에서 록 사바 의원으로 당선되어 원내 진출한다.


1984년 총리이자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시크교 분리독립 운동을 과잉 진압한데 대한 불만으로 시크교 출신 경호원에게 암살당하게 된다. 전국에서 시크교도들에 대한 폭행 테러가 가해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국민회의 중진들의 추대로 총리직을 이어 받아 제6대 인도 공화국 총리기 된다. 곧 의회를 해산하고 8번째 총선을 실시했으며 라지브가 이끄는 국민회의는 압도적인 지지로 의회를 장악하며 정권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의 나이 40세에 인도 최연소 총리가 된 것이다.

정부 평가

라지브 간디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폈다.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장려금 및 세금 혜택을 지원하고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컴퓨터, 방산, 통신 산업 등 과학 기술 관련 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했다. 다만 친 도시적, 친 기업적 정책으로 빈부격차를 가속화 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외 정책으로는 높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파키스탄과 대화에 나서기도 했고, 스리랑카 내 타밀 분리주의자들에 반대하는 내용의 협정을 스리랑카 정부와 맺기도 했다.


1987년 스웨덴 무기회사 Bofors와의 방산 계약 과정에 정부요인들이 수백만 달러의 뒷돈을 받았다는 스캔들이 터졌고, 이는 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윽고 벌어진 1989년 록 사바 총선에서 V. P. 싱이 이끄는 제3전선의 일종인 National Front에게 패하여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

사망

1991년 총선에서 타밀 나두 주 스리페룸부두르에서 해당 지역구 후보자를 지원 유세하던 도중 스리랑카 타밀 분리주의 무장투쟁 단체인 '타밀 일람 해방 호랑이(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LTTE)' 소속 여성 조직원의 자살 폭탄 테러에 숨지고 만다. 총리 시절에 맺은 스리랑카와의 협정이 그의 목숨을 노린 것이다.

참고 자료

각주

각주

  1. 산자이 간디는 라지브와 달리 일찍 부터 정치적 야망을 드러냈고,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와 함께 국민회의를 이끌고 있었다.
  2. 소냐 간디의 반대도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