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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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

(1526 ~ 1857)

무굴 제국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북인도를 중심으로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차지했던 이슬람 왕조이다. 무굴(Mughal)은 페르시아어로 몽골을 의미하며, 지배층은 투르크계 이슬람 세력이었다. 이들은 델리 왕조의 마지막 왕조인 로디 왕조를 무너뜨리고 인도의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성장했다. 후마윤 시기에 제국은 잠시 멸망하여 수르 왕조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곧 회복하였다. 아우랑제브 시기에는 제국의 판도가 데칸 고원을 넘어 인도 남부까지 확장됨으로써 마우리아 왕조굽타 왕조의 뒤를 이어 새롭게 등장한 통일 제국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또한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연결하는 제국을 건설한 만큼 동서 교역의 요충지를 활용한 실크로드 교역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부를 쌓기도 했다. 다만 제국 내의 민족 및 종교 간의 갈등은 왕조가 존속했던 기간 내내 문제가 되었다.[1]


이시기에 이슬람 문화는 인도에 더욱더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게 되었고, 투르크-페르시아 문화도 인도 문화 정체성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특히 강력한 통치기반 속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된 건축 및 예술 영역의 후원은 굽타 왕조 이후 새롭게 떠오른 화려한 문화적 황금기를 이룩해 냈다는 평가다. 타지마할(Taj Mahal)로 대표되는 수많은 궁전, 모스크 등은 당시의 번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이시기에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영국 등을 통해 들어온 유럽식 문화 양식도 인도 예술 영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510년 포르투갈이 고아(Goa)항을 점령한 것을 기점으로 유럽인들의 인도진출도 가속화되었던 시대이다. 포르투갈 세력 외에도 16세기 말엽부터 네덜란드, 영국 세력이 인도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동방 교역로는 이슬람 세력(오스만 등)에 의해 막혀있었기 때문에 이를 대신할 수 있는 해상 교역로를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인도까지 오게된 것이다. 그들의 주된 취급 물품은 당시 고가로 팔렸던 동방 향신료와 직물 등이었고,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차츰 프랑스, 스페인 세력도 인도의 상권을 손에 넣기위해 달려들었지만, 영국이 프랑스 세력을 꺾은 18세기 중엽 부터는 영국의 독점적인 지위가 확고해 진다.

바부르 시대

(재위 1526 ~ 1530)

티무르의 자손이자 징기스칸의 자손인 바부르(Babur, 재위 1526 ~ 1530)[2]는 중앙아시아의 페르가나 지방 출신의 투르크 지배자로서 사마르칸트를 정복하여 그의 조상 티무르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희망과는 달리 2차례에 걸친 사마르칸트 정복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후 인도로 눈을 돌려 다른 형태로 자신을 꿈을 이루려고 하였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거점으로 하여 인도 서북부 펀잡 지방을 주로 공략하다가, 1520년 경부터 인도 내륙지방까지 침공하기에 이른다. 당시 델리에는 델리 왕조의 마지막인 로디 왕조를 파니파트 전투에서 물리쳤고, 곧바로 델리아그라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슬람 왕조를 창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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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윤 시대

(재위 1530 ~ 1540 / 1555 ~ 1556)

바부르 사후 그의 아들 후마윤(Humayun, 재위 1530 ~ 1540)이 제국을 승계했다. 불안정한 제국 내부 사정 속에서 구자라트 지방의 바하두르(Bahadur)와 비하르 지방의 쉐르 샤(Sher Shah Suri, 재위 1540 ~ 1545) 세력들과의 세력 다툼을 이어나갔다. 1540년 수르 왕조의 쉐르 샤에게 패배하여 사파비(Safavid) 왕조 치하의 페르시아 지방으로 망명하였고, 15년간 절치부심한 후 쉐르 샤가 사망한 틈을 이용하여 수르 왕조를 물리치고 무굴 제국의 왕좌를 재탈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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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바르 대제(악바르 1세) 시대

(재위 1556 ~ 1605)

악바르 1세(Akbar I, 재위 1556 ~ 1605)는 후마윤의 후계자로 무굴 제국의 전성기를 이룩한 위대한 군주로 평가된다. 뛰어난 기동전으로 제국의 판도를 넓혀나갔으며, 확장된 영토를 합리적으로 통치함으로써 안정적인 통치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시대에 시행되었던 비이슬람교에 대한 관용 정책과 인두세 폐지 결정은 그가 단순한 정복군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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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기르 시대

(재위 1605 ~ 1627)

악바르 대제의 뒤를 이어 통치권을 계승한 자한기르(Jahangir, 재위 1605 ~ 1627)는 부왕의 성과를 계승 발전시켜 무굴 제국을 더욱더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라자스탄 지역과 벵갈 지역, 그리고 데칸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제국은 경제적으로도 번영했으며, 미술, 건축 등 다방면에서 화려함을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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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 자한 시대

(재위 1628 ~ 1658)

샤 자한(Shah Jahan, 재위 1628 ~1658)은 무굴 제국의 5번째 황제이다. 조부 악바르 대제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영토를 방대하게 넓혔고, 부왕 자한기르의 업적을 계승하여 제국을 더욱더 강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황후 뭄타즈 마할이 사망한 이후 그녀를 위한 무덤인 타지마할을 짓는데 국력을 소모하는 등 실정을 거듭하다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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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랑제브 시대

(재위 1658 ~ 1707)

샤 자한을 유폐시키고 스스로 황제가된 아우랑제브(Auranzeb, 1658 ~ 1707)는 매우 야심이 큰 인물로서 곧바로 정복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치세에는 제국의 영토가 인도 남부 지방까지 확대되어 사실상 통일 왕조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는 독실한 무슬림으로서 이전 황제들이 실시했던 종교 관용정책들을 모두 폐지했다. 인두세를 부활시키고, 이슬람교로의 강제 개종을 강요했다. 그의 폭정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들끓기 시작했고, 거대한 제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국가 역량은 점차 소진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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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쇠퇴와 멸망

(1707 ~ 1858)

아우랑제브는 후사를 제대로 정하지 않고 사망하였기 때문에 그의 사후 황제 승계권을 놓고 엄청난 갈등이 발생했다. 그의 아들인 바하두르 샤(Bahadur Shah, 재위 1707 ~ 1712)가 혼란을 다소 수습하고 안정을 위해 노력했으나 5년만에 죽어버리게 되어, 황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궁중 암투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제국의 내분과 반란은 점점 심해져 갔고 자연스럽게 황권의 권위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무하마드 샤(Muhammad Shah, 재위 1719 ~ 1748)는 다시금 제국을 안정시키려 했으나 그 흐름을 바꾸기에 역부족이었다.


18세기에 들어 하이데라바드 지역 세력이 독립하여 니잠(Nizam) 정권이 들어 서게되고, 벵갈 세력도 사실상 독립의 지위를 누렸다. 마라타 왕조은 나날이 세력을 키워 인도 북부를 포함한 델리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시크교 세력 또한 제국의 힘이 약해지는 틈을 타서 펀잡 지방에 독자 세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여기에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의 나디르 샤(Nader Shah)가 1739년 무굴 제국을 침략하여 델리를 함락시킨 후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했고, 그 뒤를 이어 아프가니스탄 두라니 왕조의 아마드 샤(Ahmad Shah)도 제국을 침입하여 또한번 유린함으로써 무굴 제국은 쇠락의 결정타를 맞게 된다.


1760년 마라타군델리까지 진격했을 무렵 힌두교 세력의 확장을 두려워한 무굴 제국은 이전에 자신들을 침략했었던 아마드 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과 함께 파니파트(Panipat)[3]에서 힌두-마라타군을 상대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마라타군은 대패했고 그들의 북진은 더이상 불가능하게 된다. 무굴 제국의 경우 비록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위세가 더욱더 초라해져서 델리 인근 지역에만을 통치할 수 있는 사실상 소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도의 분열과 혼란기를 틈타 유럽세력의 진출도 가속화 되었다. 그중 영국이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프랑스를 물리친 이래로 인도 내의 독점적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게 된다.


이후 100여년 간, 1857년까지 무굴 제국은 명목상으로 나마 왕조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이전의 찬란한 제국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지막 황제 비하두르 샤 2세(Bahadur Shah II, 재위 1837 ~ 1857)는 세포이 항쟁에 가담하였는데, 이를 진압한 영국은 1858년 그를 폐위하고 1877년 인도 제국(British Raj)을 성립시킴으로서 무굴 제국은 공식적으로 멸망하게 된다.

참고 자료

각주

각주

  1. 특히 아우랑제브 시대는 영토적으로는 인도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그가 펼친 비이슬람에 대한 무관용 정책은 제국이 멸망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2. 부계가 티무르, 모계가 징기스칸 혈통이다.
  3. 바부르가 로디 왕조의 군대를 꺾은 곳과 동일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