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요디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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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요디아 이슈(Ayodhya dispute, Ayodhya issue)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의 아요디아 시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종교적, 역사적 논쟁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힌두교도들과 무슬림들간의 종교 분쟁의 성격을 지니며,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되온 양측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폭발하는 지점 중 하나이다. 힌두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전설속의 영웅이자 신으로 추앙받는 '라마(Rama)'가 아요디아에서 태어났다는 믿음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출생장소로 지목되는 곳에 무굴 제국 시기에 건설된 '바브리 마스지드 (Babri Masjid)'라는 이슬람교 모스크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두고 양 종교 세력 간의 갈등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결국 1992년 힌두교 광신자들에 의해 바브리 마스지드가 파괴됨으로써 사태는 더욱더 악화되었다.

갈등의 배경

인도종교 갈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슬람 세력이 인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12세기 이후 부터 힌두교이슬람교는 서로 물과 기름처럼 대립해 왔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특히 힌두교 민족주의자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조장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는데 이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외세의 잔재로 보기 때문에, 진정한 독립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축출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바브리 마스지드'를 두고 발생한 대립과 파괴행위 또한 이러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힌두교이슬람교 간의 갈등은 1980년대 들어서 몇가지 사건으로 말미암아 심화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라지브 간디 정부 시기에 제정된 '무슬림 여성 법률(The Muslim Women Act, 1986)'이다. 이법에 의하면 이혼한 여성 무슬림이슬람교 전통 교리에 따라 3개월[1] 안에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해야 했다. 이는 정부이슬람교의 가르침을 공인하고 추종한 것으로 여겨져서 수 많은 힌두교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와 함께 1981년에는 타밀 나두 지역의 불가촉 천민들이 이슬람교로 집단 개종한 사건이 발생했하기도 했는데,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힌두교 민족주의자들은 이슬람교의 확산을 경계하면서 집단적인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라마

라마(Rama)는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크리슈나의 7번째 화신이다. 힌두교 고대 서사시 중의 하나인 라마야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완벽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진다. 라마야나에 의하면 그는 코살라국의 왕자로 아요디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며 다르마(Dharma, 法)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라마는 오늘날까지 많은 수의 인도인들로 부터 숭배 받고 있고, 그를 주인공으로한 TV 드라마나 영화도 제작되었다.

바브리 마스지드

바브리 마스지드 (Babri Masjid)는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인 바부르(Babur, 재위 1526 ~ 1530)가 1529년에 건립한 이슬람교 사원이다. 지금의 아요디아 시의 파이자바드(Faizabad) 디스트릭트 내에 있었는데, 라마야나에 의하면 '라마(Rama)'가 이곳에서 출생했다고 한다.[2] 그리고 대다수 힌두교인들의 믿음에 의하면 라마 사원이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있었지만, 무슬림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바로 그자리에 이슬람 사원인 바브리 마스지드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양 종교 분쟁의 핵심지인 것이다.


이러한 양측의 갈등은 19세부터 시작되었다. 1850년에 지역 힌두교도들이 바브리 마스지드 주변 부지의 소유권을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1949년 라마 사원을 재건하기 위해 벌인 소요사태까지 분쟁적인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독립 직후, 자와할랄 네루 정부는 분쟁의 확산을 막고자 모스크 출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분쟁의 전개

1980년대 중반, 힌두교 극우 단체인 세계 힌두 위원회(VHP)와 국가 봉사단(RSS)은 라마 사원 건립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우익 정당인 인도 인민당(BJP)도 이들에 가세했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적으로 돌림으로써 힌두교인들의 결집을 유도했고, 동시에 힌두교 민족주의 세력의 확장을 의도했다. 이는 곧 전국적인 이슈로 확대되었고, 양 종교 간의 크고 작은 유혈 충돌을 야기했다.


1986년 파이자바드 지방법원은 바브리 마스지드를 힌두교도들에게 개방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당시 정치권은 전통적인 세속주의 노선과는 달리 각 종교들의 첨예한 대립 양상에 끌려 다니기만 했다. 정확하게는 양방의 요구를 마지못해 따라가는 형태가 차례로 반복되었던 것이다. 다수의 표를 의식한 퇴행적 의사결정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고, 사건을 심화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1989년 총선에서 인도 국민회의는 야당 연합에 패배했고, V. P. 싱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우타르 프라데시 주의회에서도 인도 인민당이 과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1990년 인도 인민당의 리더였던 L. K. 아드바니는 사원 건립 운동의 일환으로 아요디아 성지 순례 운동(Ram Rath Yatra)을 추진했다. 1992년 12월 6일 VHP인도 인민당이 주도하여 150,000명의 군중을 이끌고 바브리 마스지드에서 라마 사원 건립 재현 행사를 기획하게 된다. 모스크 주면으로 모여든 군중들을 상대로 아드바니를 비롯한 극우 인사들의 연설이 시작되었고, 정오 무렵부터 흥분한 군중들은 경찰의 보호 라인을 뚫고 들어가 모스크 건물을 파괴하기 시작했다.[3] 모스크는 단 몇시간만에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발생한 델리, 뭄바이, 수라트, 보팔 등의 전국적 소요 사태로 인해 총 2,00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4]

여파

대다수 힌두교도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었지만, 무슬림 공동체는 모스크 파괴행위는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용납되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분개했다. 흥분한 힌두교도들과 분노한 이슬람교도들 간의 폭력사태는 계속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봄베이 폭동 사건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수파인 무슬림들이 다수파인 힌두교도들을 제대로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소요 사태에서 발생한 사상자도 대부분 무슬림들이었다. 다만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란 등 인근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역으로 무슬림들이 힌두교도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치권도 인도 인민당을 중심으로한 힌두교 우파 정당들이 세력를 과시하며 제도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프로파간다가 성공한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이용하여 90년대 후반 부터 인도 국민회의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이 사건의 주동자였던 VHP, RSS, 인도 인민당의 소속원들이 대거 체포되었고, VHPRSS는 금지단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우타르 프라데시 주수상은 이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도 했다.


1992년 연방 정부는 '리베르한 위원회(Liberhan Commission)'을 발족해 바브리 마스지드 파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총 16년에 걸친 대대적인 조사 결과 1,000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가 2009년 만모한 싱 정부에게 제출되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해당 사건은 사전에 철저히 계획되고 의도된 것이었다고 한다.

최근 이슈

2003년, 법원의 요청에 의해 인도 정부 산하 '유적 조사 기구 (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에서 실시한 바브리 마스지드 부지의 고고학적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는 과거에 지어졌던 힌두교 양식의 건물들 흔적이 발견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라마 사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그 실체에 대해서는 논쟁 중이다.


2010년 9월 30일, 알라하바드 고등 법원에서 바브리 마스지드 부지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대해 판결했다. 자칫하면 거대한 소요사태가 재발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판결 당일 경찰 경비병력들은 우타르 프라데시 주 전역에서 비상 경계 태세에 들어가기도 했다. 판결문은 8,500페이지에 달했으며, 3가지 주요 내용에 대한 법적 판단이 들어 있었다. 우선 바브리 마스지드 부지는 역사적으로 라마의 출생지로 인정되며, 16세기 모스크가 새워지기 전에 불명의 사원이 파괴되었었고, 그것은 이슬람 양식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스크 부지를 3등분하여 2곳은 라마와 그의 아내 시타를 위한 장소로 정하고 나머지 한곳을 무슬림을 위한 장소로 정했다.[5] 어느쪽의 승리도 패배도 아닌 절묘한 균형점을 찾은 판결로 평가되며, 다행히도 이와 관련된 대규모 소요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결정에 만족하지 못한 힌두교무슬림 단체 약쪽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원심에 대해 집행 정지 결정을 내리고 심리 절차를 진행했다.[6][7]


2019년 11월 9일 인도 대법원은 9년 동안 진행된 해당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분쟁 대상인 2.77에이커 부지는 ' 사원' 건립을 위해 힌두교측 귀속될 것이며, 반면 무슬림들에는 모스크 건립을 위해 별도의 5에이커의 대체 부지가 제공될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힌두교 단체와 여당인 인도 인민당측은 환영을 표시했지만, 무슬림 단체는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8]

참고 자료

각주

각주

  1. 위자료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이혼한 날로부터 3개월 경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민사 규정을 종교별로 구분하여 적용하게 된 것으로서, 네루 정부 이래로 지켜오던 세속주의 원칙이 사실상 형해화된 것을 의미한다.
  2. 본래 이곳은 '라마의 요새'라는 뜻으로 '람콧(Ramkot)'으로 불렸다.
  3. VHP나 BJP 인사들은 이러한 행위를 사실상 방조했다는 의혹을 사고있다.
  4. India braced for violence ahead of Muslim v Hindu Ayodhya verdict, The Telegraph, 2010.09.29
  5. Web Archive Allahabad High Court:Decision of Hon'ble Special Full Bench hearing Ayodhya Matters
  6. BBC, Q&A: The Ayodhya dispute, 2012.12.05
  7. SC's Ayodhya verdict today: All you need to know about Babri Masjid case, Business Standard, 2019.11.08
  8. Ayodhya verdict live: Temple to come up at disputed land, The Hindu Business Line, 2019.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