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차르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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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woo8282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2월 22일 (수) 20:3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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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차르 학살(Amritsar massacre, Jallianwala Bagh massacre)은 1919년 4월 13일 펀잡 지방의 암리차르에서 인도 총독부 군대가 반영 시위대를 상대로 자행한 학살 사건이다.

사건의 배경

1차 세계대전 중 인도 국민회의를 위시한 인도 지식인 그룹들은 종전후 자치권 획들을 목적으로 당시 참전 중이었던 영국을 지원했다. 하지만 종전 후 영국은 이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이 이들을 무시했고, 더 나아가 영장 없이 체포, 구금 및 재판을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롤라트법(Rowlatt Act, 1919)를 제정하여 인도 민중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개시하였다. 이에 불만이 최고조로 달한 인도인들은 전국적인 반영 투쟁을 벌여 나갔다.

전개

1919년 4월 13일, 인도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펀잡 지방의 암리차르 시내 잘리안왈라 바그(Jallianwala Bagh) 공원에 15,000명의 군중들이 반영 평화 시위를 개최하고 있었다. 당일은 시크교축제 중 하나인 바이사키(Baisakhi)가 열리는 날이어서 많은 민중들이 집회에 참석해 있엇다. 잘리안왈라 바그 공원은 28,000 m2의 부지에 사방이 벽면 형태로 둘러 쌓인 구조였다.


당시 치안을 담당했던 영국군 지후관 레기날드 다이어(Reginald Dyer)는 모든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으나, 축제 기간인 관계로 이러한 사실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집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다이어는 이를 진압할 목적으로 군중들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렸다. 10분여 동안 지속된 무차별 사격에 1,000여명 이상이 사살당하는 참사가 벌어 졌다. 총독부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총 379명이 사망하고, 1,2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1] 하지만 실제로는 사망자만 1,000명이 넘어간다는 보고도 있다.

후폭풍

주동자 다이어는 사건이 진상이 밝혀진 이후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에의해 비난 받았다. 영국 하원도 이를 비난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고, 결국 1920년 7월에 강제 예편되었다. 하지만 영국 본토의 보수파들과 상원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다.


민간인을 상대로 영국군이 벌인 집단 학살 사건은 전국적인 반영투쟁을 불러왔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자신이 대영 제국으로부터 받은 훈장을 반납하며 대중 시위를 이끄었고, 마하트마 간디를 중심으로 한 인도 국민회의는 영국산 물품 불매 및 비폭력, 비협조 운동을 이끌며 대대적인 반영 투쟁을 벌여나갔다.

참고 자료

각주

각주

  1. Nigel Collett (15 October 2006). The Butcher of Amritsar: General Reginald Dyer. A&C Black. p. 263. ISBN 978-1-85285-5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