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국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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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국민회의
Flag of the Indian National Congress.svg.png
정당명 India National Congress (INC)
भारतीय राष्ट्रीय काँग्रेस
당수 소냐 간디
창당일 1885
중앙 당사 뉴델리
등록 전국 정당
정치노선 사회주의, 민주주의, 세속주의
스펙트럼 중도
정당 연합 UPA
상징색  하늘색 
라쟈 사바 54 / 245
록 사바 48 / 545
웹페이지 http://www.inc.in/

인도 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 INC)는 인도정당이다. 통칭 "Congress"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1885년 봄베이에서 설립된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서, 반영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활동했다. 독립 이후에는 인도의 가장 지배적인 정당으로서, 자와할랄 네루인디라 간디, 그리고 라지브 간디 등을 총리로 배출하는 등 수십년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중도 노선을 따르고 있으며, 네루 총리 이래로 사회 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현재 당 대표는 소냐 간디이며, UPA 연합을 주도하면서 인도 인민당[1]이 중심이된 NDA의 대척점에 있다. 2014년 총선에서 참패하였다. 2019년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또 다시 참패했다.

독립 운동

본래 인도 국민회의는 인도 제국(British Raj) 시기, 원활한 통치를 위해 영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설립한 단체였다. 당시 인도의 지주, 자본가, 지식인 등이 주축이된 단체를 만들어 영국과 인도의 관계를 개선 시키고 통치에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20세기 이후 부터 국민회의를 구성했던 지식인들이 주체가 되어 본격적으로 반영 독립 운동에 나서게된다. 그 시작은 1905년 영국의 '벵갈 분할령'[2]에 대한 반대투쟁이었다. 영국 정부는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전인도 무슬림 연맹을 발족 시켜 국민회의를 견제하려 하였다.


국민회의는 자치권 획득을 조건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종전 이후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롤라트법(Rowlatt Act)을 통과시켜 국민회의를 비롯한 자치를 원하는 인도인들을 탄압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암리차르 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3] 마하트마 간디가 이끄는 인도 국민회의는 비폭력, 비협조 운동을 전개하며 이에 맞섰으며, 완전자치 실현을 목표로한 '스와라지(Swaraj)' 운동과 영국 상품을 거부하고 국산품 애용 장려를 위한 '스와데시(Swadeshi)'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1920년대까지는 전인도 무슬림 연맹을 비롯한 무슬림 세력과 연대하여 반영 투쟁에 나섰지만, 뿌리 깊은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양측은 점점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1920년대 말에는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는 급진파와 영국 통치하에서 자치를 목적으로 하는 보수파와의 갈등이 깊어지기도 했다.


1929년 1월 26일 국민회의의 의장이었던 자와할랄 네루는 '인도 독립 선언서(Pruna Swaraji)'를 발표하고, 당일을 독립 기념일로 지정함으로서 완전한 독립을 얻기위한 투쟁노선으로 돌입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총독부의 염세법에 저항하기 위해 단디 행진(소금 사티아그라하)를 추진하기도 했다.


1935년 인도 통치법(Government of India Act)에 따라 실시된 전국 선거에서 네루의 리더쉽 하에 국민회의가 전국저인 지지를 받아 의회의 다수를 점할 수 있었다.


2차대전 도중에도 영국에 대한 반영 독립 투쟁을 전개해 나갔으며, 네루간디를 비롯한 국민회의의 지도부들이 대거 투옥되는 등 탄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끈질긴 독립투쟁의 선봉에서서 1947년 8월 15일 인도 제국은 결국 해체되었고 독립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무슬림 세력들과의 대립은 인도 공화국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독립 이후

1952년 최초의 총선을 시작으로 1957년, 1962년 총선까지 자와할랄 네루가 이끌었던 국민회의가 승리하여 정권을 차지하였다. 그는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민주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세속주의를 추구하였다. 지금의 국민회의 이념노선은 사실상 네루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4년 네루가 사망하고 그의 딸 인디라 간디가 당수가 되었고, 당 안팍의 정치적 견제를 극복하고 1967년 총선에서 승리하였다. 1971년 총선에서도 승리했으나, 1975년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위해 비상조치권을 발동하여 반대파를 탄압하고 독재체제를 형성하기도 했다. 1977년 비상조치 해제후 치러진 선거에서 Janata Party에 패배해서 국민회의는 최초로 정권을 잃게 된다.


국민회의는 내분이 발생했고 인디라 간디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1978년 탈당하여 인도 국민회의 (I)를 결성한다. 그녀는 1980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여 총리에 오름으로써 재기에 성공한다. 1984년 시크교 분리주의자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것에 불만을 품은 시크교 출신 경호원에게 살해당한다.


인디라 간디 암살 이후 그녀의 아들인 라지브 간디총리직을 계승하였고 1984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이어나갔으나, 1989년 총선에서 라지브 간디가 이끄는 국민회의는 Janata Dal이 중심이된 국민 전선에 패하여 다시 정권을 잃게된다.


1991년 라지브 간디가 총선 유세 도중 폭탄 테러로 암살되었고, 나라시마 라오가 이끄는 국민회의가 군소 좌파 정당들과의 정당 연합을 구성해서 다시 집권을 하게된다. 그러나 1996년, 1998년, 1999년 총선에서 국민회의는 계속적으로 패배하하였다. 1998년 라지브 간디의 배우자인 소냐 간디가 국민회의의 당수에 취임한다.


2004년 총선에서 소냐 간디와 그녀의 아들인 라훌 간디의 노력으로 인도 인민당을 꺾고 다시금 정권을 재 탈환 할 수 있었다. 소냐 간디는 직접 총리에 취임하지 않았고 만모한 싱이 그녀를 대신하였다.[4] 이후 2009년 총선에서도 승리하여 정권을 이어갔으나, 2014년 나렌드라 모디가 이끄는 인도 인민당에게 참패하면서 정권을 잃게 된다.


2017년 12월 11일 당대표로 라훌 간디가 취임함에 따라, 소냐 간디의 19년 간의 재임기간은 종료하게 되었다.


새롭게 총재로 취임한 라훌 간디는 기존의 도련님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려 노력했지만, 기울어져 가는 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강력한 라이벌인 모디 총리에 맞서기는 많은 면에서 역부족이었다. 2018년 카르나타카마드야프라데시, 라자스탄 등에서 있었던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를 이끄는 등, 나름의 성과를 보여줬지만, 2019년 총선에서 인도 인민당에 참패하면서 그 책임으로 결국 7월 3일 총재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사임에 대해 당내에서는 강력히 만류하는 분위기가 대세였지만, 그는 사임 의사를 확고히 했다. 하지만 그를 대신할 새로운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당내 분란과 혼란은 가중되는 모양새이다. 실제 다수의 중진급 인사들이 라이벌인 인도 인민당으로 합류하는 등,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5]

이념 노선

인도 국민회는 자유, 관용, 평등, 인권의 가치를 추구하는 중도 포지션의 사회 민주주의, 세속주의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정책은 시장 경제 체제와 계획 경제 체제를 조합한 혼합 경제 체제를 추구한다. 냉전시기 철저하게 비동맹 노선[6]으로 제3세계 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려 했고, 2000년대 이후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들과 우호관계를 맺고 정치적 경제적 협력 체계를 유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네루 정부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책 영향으로 국민회의 외에 인도 공산당을 비롯한 여타 좌파 정당들이 힘을 얻고 세력을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집권했던 정치 기득권 세력인 만큼 부패 스캔들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사회 민주주의를 내세우긴 했지만, 인디라 간디 총리 시절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스스로 독재자가 되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역사도 있다.

조직

국민회의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자 핵심기관은 All India Congress Committee (AICC)이다. AICC에는 당 실무 위원회 격인 Congress Working Committee (CWC)가 있다. 주와 직할지 단위에는 Pradesh Congress Committee (PCC)가 있으며 각 PCC 대표에 의해 AICC 위원들이 선출되며, AICC에서 CWC 위원들과 당수를 선출한다.


연방의회 의원 조직으로는 Congress Parliamentary Party (CPP)가 있고, 주의회 의원 조직으로는 Congress Legislative Party (CLP)가 있다. 당의 노동조합으로는 Indian National Trade Union Congress (INTUC)가 있고, 여성 조직인 All India Mahila Congress (AIMC), 학생 조직인 National Students Union of India (NSUI), 소년 조직인 Indian Youth Congress (IYC) 등도 있다.

주요인물

참고자료

각주

각주

  1. 인도 인민당은 지금 여당으로, 힌두 민족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2. 벵갈 지방을 이슬람교인이 많은 동 벵갈과 힌두교인이 많은 서 벵갈로 분할하려고 했다.
  3. 펀잡 주, 암리차르에 모인 반영 평화시위에서 영국군이 시위대를 상대로 자행한 학살사건이다.
  4. 그녀가 이탈리아 혈통인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5. Leadership vacuum costs the Cong dear as more leaders join the BJP, The Hindu Business Line, 2019.07.30
  6. 다만 당시 소련과는 어느정도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