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샨 왕조

인도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쿠샨 왕조

(30 ~ 375)

쿠샨(Kushan) 왕조는 월지(月氏, 月支)족이 인도대륙 북서쪽으로 진출하여 그리스 잔존 세력을 정복하고 세운 나라이다.

기원

쿠샨 민족의 기원은 중국 서쪽 끝 타림 분지 초원에 살던 샤카족의 일파인 월지(月氏, 月支)족이다. 이들은 흉노의 침입에 의해 고향에서 밀려나 중앙아시아쪽으로 이동하였다. 당시 인도 대륙 북서부에서 세력을 형성했던 박트리아 왕조와 자연스럽게 충돌하였고, 기원전 130년경 정복에 성공하게 된다. 이들은 5개의[1] 큰 부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귀상(貴霜)족이 나머지 부족을 통합하여 기원전 30년경 쿠샨(Kushan)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발전

쿠샨 제국은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실크로드 교역로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중국, 및 페르시아와 교류했고, 인도양을 이용한 해상 교역로를 통해 로마 제국과도 교류했다. 당시 그들은 박트리아 지역의 그리스 문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그리스 문자와 그리스식 화폐(동전)를 사용하기도 했다.[2] 다만 타림 분지 부근에서 중국(후한)과 수차례 전쟁을 치뤘고, 영토의 일부를 빼앗기기도 했다.[3]


쿠샨 왕조는 카니슈카 대제(Kanishka the Great, 재위 127 ~ 147)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 했는데, 그의 치세에는 제국의 판도가 북인도 전체와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일부까지 확장되었다. 동서양을 잇는 요충지를 활용한 교역으로 제국은 더욱 번성했다. 그는 철학과 학문, 종교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특히 불교의 보호자로 불릴 정도로 국가적 차원에서 불교를 보호하고 숭상하였다. 당시 대승불교가 매우 발달했는데, 제국의 실크로드 교역로를 따라 중앙아시아, 티베트, 중국 등으로 활발하게 전파되기도 했다. 그리고 불교는 그리스식 문화 양식(간다라 양식)[4]과 접목되어 부처와 각종 보살들의 구체적인 캐릭터 상(불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멸망

카니슈카 대제 사망이후 쿠샨 왕조는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이후 3세기 사산조 페르시아(the Persian Sasanian Empire)에의해 멸망하게 된다.

참고 자료

각주

각주

  1. '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휴밀(休密), 귀상(貴霜), 쌍미(雙靡), 힐돈(肸頓), 도밀(都密) 등 5개의 부족이 있었다고 한다.
  2. 카니슈카 시대의 동전들, coinarchives.com
  3. '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당시 중국은 지금의 신장 지역인 타림 분지에서 쿠샨군을 패퇴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4. 간다라 미술품, minorsights.com